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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모음

생각의 발자취

이 생각은 2026년 09월 11일 시작되어 총 2명이 참여하였습니다.
  • 생각의 탄생
  • 생각의 발전
  • 생각의 완성
천이라는 숫자가 하루 종일 따라다녔다.
 
민원업무 담당자와 통화를 하다가 우연히 들은 숫자였다.
 
하루에 천 건이 넘는 국민신문고 민원이 들어온다고 했다. 그 안에는 반복해서 들어오는 민원도 적지 않다고 했다.
 
전화를 끊고도 한동안 그 숫자가 가라앉지 않았다.
 
천 건.
 
얼마 전 나는 민원을 조사하는 일을 조금 다르게 해보자는 제안을 냈다. 업무를 맡은 부서가 자신의 일을 설명하고 스스로 민원을 조사하는 지금의 방식에서 한 걸음 벗어나, 조사 경험을 가진 사람이 사실관계를 따로 들여다보자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천 건이라니.
 
그 많은 민원을 누가 다 조사할 수 있을까.
 
좋은 생각이라고 여겼던 것이 숫자 하나 앞에서 갑자기 무거워졌다.
 
한참 뒤, 엉뚱한 생각 하나가 떠올랐다.
 
천 건은 처음부터 천 건이었을까.
 
그 순간 내가 지나온 민원들이 생각났다.
 
처음에는 다섯 건이었다.
 
대단한 것을 요구한 것도 아니었다. 내가 알고 싶은 몇 가지 사실이 있었고, 그것을 확인해 달라고 했다.
 
답변은 왔다.
 
그런데 내가 물었던 것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다시 물었다.
 
또 답변이 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질문은 줄어들지 않았다.
 
그렇게 한 번의 민원이 다시 민원이 되고, 어떤 것은 감사의 문까지 갔다. 처음의 다섯 건은 어느새 가지를 치고 있었다.
 
나도 지쳤을 것이다.
 
그 글을 다시 받아 읽어야 했던 공무원도 지쳤을 것이다.
 
서로 끝내고 싶었는데 끝나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이상한 일이다.
 
민원인은 답을 받았는데 다시 묻고, 행정기관은 답을 했는데 다시 답해야 한다.
 
그 사이에 무엇이 빠져 있었을까.
 
나는 오래 생각하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처음 물었던 사실이었다.
 
그것 하나가 제대로 확인되지 않으면 질문은 사라지지 않는다.
 
물길을 막으면 물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길을 찾는다.
 
민원도 어쩌면 그런 것인지 모른다.
 
한 곳에서 답을 얻지 못하면 다시 돌아오고, 그래도 길이 없으면 다른 문을 두드린다.
 
재민원이 되고, 감사가 되고, 때로는 더 먼 곳까지 흘러간다.
 
그제야 천이라는 숫자가 조금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우리는 하루에 들어오는 민원의 수를 센다.
 
천 건이 들어왔다고 말한다.
 
그런데 그 천 건 가운데 처음 한 번 제대로 확인했다면 두 번째로 돌아오지 않았을 질문은 몇 개였을까.
 
한 사람이 같은 일을 다섯 번 물었다면 기록에는 다섯 건이 남는다.
 
하지만 처음의 물줄기는 하나였다.
 
그렇다면 천 건을 처리하기 위해 사람을 얼마나 더 늘려야 하는지만 물을 일도 아니다.
 
한 번 흘러간 물이 왜 다시 돌아오는지 먼저 살펴볼 일이다.
 
물론 모든 민원이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아무리 설명해도 같은 주장을 되풀이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행정이 받아들일 수 없는 요구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더 궁금하다.
 
정말 반복되는 민원과, 제대로 확인되지 않아 다시 돌아온 민원은 얼마나 될까.
 
그 둘을 한번 나누어 본 적은 있을까.
 
처음 나는 몇몇 지방자치단체에서 전담조직을 시험해보고 천천히 넓혀가면 된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그 생각도 조금 달라졌다.
 
먼저 물길부터 살펴봤으면 한다.
 
어디에서 가장 많은 민원이 들어오고, 어디에서 같은 질문이 되돌아오며, 최초의 한 건이 몇 번의 민원으로 불어나고 있는지.
 
그 흐름이 생각보다 크다면 오래 시험만 하고 있을 일은 아닐 것이다.
 
사람도 필요할 것이다.
 
돈도 들 것이다.
 
하지만 같은 질문을 두 번 읽고, 세 번 조사하고, 또 다른 부서에서 다시 들여다보는 데 이미 얼마의 시간과 사람이 쓰이고 있는지도 함께 계산해야 한다.
 
첫 번째 물길을 바로잡는 데 드는 비용과 넘친 물을 계속 퍼내는 데 드는 비용은 다르다.
 
그날 들었던 천이라는 숫자는 처음에는 내 생각을 흔들었다.
 
이제는 오히려 그 숫자가 묻고 있다.
 
천 건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아니,
 
그 천 건은 어디에서 왔는가.
 
어쩌면 그 안에는 한 번 묻고 끝내고 싶었던 사람과 한 번 답하고 끝내고 싶었던 사람이 함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사실 하나가 확인되지 않아 질문이 다시 돌아오고, 돌아온 질문에 다시 답하고, 그렇게 하루의 숫자가 하나씩 늘어났을지도 모른다.
 
물은 길을 만나면 조용히 흘러간다.
 
막힌 곳에서만 자꾸 돌아 나온다.
 
민원도 그랬으면 좋겠다.
처음 들어온 질문이 제 길을 만나 사실을 확인하고, 답을 얻고, 그 자리에서 조용히 흘러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면 언젠가는
 
하루 천 건이라는 숫자보다
 
다시 돌아오지 않은 질문의 수를 먼저 이야기하는 날도 오지 않을까.
 
그날 아침,
 
천이라는 숫자가 다시 떠올랐다.
 
이번에는 숫자보다 물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어디선가 막혀 다시 돌아오는 물소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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