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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모음

생각의 발자취

이 생각은 2026년 09월 10일 시작되어 총 4명이 참여하였습니다.
  • 생각의 탄생
  • 생각의 발전
  • 생각의 완성
간만에 친구와 차 한잔을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요양시설로 흘러갔다.
 
그동안 겪었던 일과 민원을 제기하게 된 과정, 행정기관에 사실관계를 확인해 달라고 요청했던 이야기를 듣던 친구가 무심히 한마디 했다.
 
힘들 거야. 행정기관도 같은 편이잖아.”
 
찻잔을 들다가 잠시 손이 멈췄다.
 
친구는 말을 하나 더 보탰다.
 
요양시설도 공공기관 같은 거잖아. 그러니까 결국 같은 편이지.”
 
정확히 말하면 요양시설이 모두 공공기관인 것은 아니다. 민간이 운영하는 시설도 많다.
 
하지만 친구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는 알 것 같았다.
 
시민의 눈에는 행정기관과 그 행정기관이 관리·감독하는 시설이 서로 자주 만나고 업무를 주고받는 하나의 체계처럼 보일 수도 있다.
 
친구는 아마 현실이 그렇다는 뜻으로 한 말이었을 것이다. 괜히 힘 빼지 말라는 걱정도 섞여 있었을지 모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같은 편이라는 말이 오래 남았다.
 
정말 행정에도 편이 있는 것일까.
 
민원을 제기하면서 내가 바랐던 것은 누군가 내 편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었다.
 
시설의 잘못을 미리 정해놓고 혼내 달라는 것도 아니었다.
 
내가 본 것과 시설이 설명하는 것이 다르다면 무엇이 사실인지 확인해 달라는 것이었다. 내가 잘못 알고 있다면 그렇다고 알려주면 되고, 시설의 설명과 실제 상황이 다르다면 그 역시 확인하면 될 일이었다.
 
그런데 민원을 몇 차례 겪으면서 이상한 장면을 보게 되었다.
 
민원인은 구체적인 사실을 묻는데 답변에는 시설의 설명이 길게 들어 있었다. 확인해 달라고 한 사항보다 시설에서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라는 문장이 앞서는 경우도 있었다.
 
물론 행정기관은 시설의 이야기도 들어야 한다. 민원인의 주장만 듣고 판단해서도 안 된다.
 
때로는 그건 민사 문제입니다”, “우리 소관 법규 밖의 일입니다라는 말로 경계선을 긋기도 한다.
 
틀린 말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시민이 궁금한 것은 그 경계선의 이름보다, 그 앞에서 행정이 무엇을 확인했는가일 때가 있다.
 
관리·감독하는 기관이 오랫동안 같은 대상을 상대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시민보다 익숙한 쪽의 설명을 먼저 받아들이게 되는 것은 아닐까.
 
문제는 그다음이다.
 
두 사람의 이야기가 다르다면 행정이 해야 할 일은 어느 한쪽의 말을 전달하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가능한 범위에서 사실을 확인하고 그 결과를 설명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보면 행정은 참 어려운 자리에 서 있다.
 
민원인의 편에만 설 수도 없고, 관리·감독하는 기관이나 시설의 편에 서서도 안 된다.
 
그래서 행정에는 이 없어야 하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행정이 반드시 서야 할 편 하나는 있는 것 같다.
 
사실의 편이다.
 
누가 말했느냐보다 무엇이 사실인가를 먼저 보고, 서로 다른 주장이 있다면 확인하고, 잘못이 없다면 없다고 말하고, 문제가 있다면 고치도록 하는 것.
 
그 단순한 과정이 제대로 작동한다면 시민은 자신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더라도 그 결과를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차를 마시고 친구와 헤어진 뒤에도 그 말이 생각났다.
 
행정기관도 같은 편이야.”
 
나는 그 말이 사실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시민들이 행정을 경험한 뒤에도 그런 말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행정이 굳이 어느 편에 서야 한다면,
 
기관의 편도, 민원인의 편도 아닌
 
사실의 편에 서 있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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