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저는 현재 제주도에 위치한 어느 한 고등학교에 재학하고 있는 교사를 꿈꾸는 평범한 고등학생입니다.
다름이 아니라 저는 현재 교육 시스템에 대해 몇가지 건의할 점이 있어 이렇게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저는 최근 학교에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왜 역사 교육이 필요한가?”라는 주제로 발표를 준비하며, 단순히 역사 과목을 보호하자는 주장이 아닌, 교육의 본질에 대해 더 깊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되었습니다. 과연 지금의 학교 교육은 어떤 인간상을 길러내고 있는가? 그리고 기술이 사회 전반을 바꾸고 있는 이 시대에,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힘은 무엇인가? AI와 자동화 기술이 확산되는 지금, 우리는 지식 그 자체보다도 정보를 해석하고 판단하며, 구조를 파악하고 관계를 통찰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2022 개정 교육과정에서 신설된 ‘역사로 탐구하는 현대 사회’ 과목은 이러한 요구에 대한 하나의 응답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 과목의 신설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역사 교육이 현실과의 연결 속에서 다시 자리 잡으려는 움직임이라고 해석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한 학생으로서, 이 변화가 학교 교육 현장에서 충분히 작동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과목은 선택형 과목이며, 실제로는 개설되지 않는 경우도 많고, 학생들이 그 취지에 맞는 탐구 경험을 온전히 누리기 어려운 경우도 많습니다. 이는 단지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역사 교육을 어떤 시선으로 보고 있는지, 그리고 교육 전반에서 어떤 기능으로 배치하고 있는지를 되묻게 만듭니다.
저는 역사 교육을 단지 과거를 배우는 과정으로 보지 않습니다. 역사는 인간과 구조, 변화와 결과 사이의 인과를 해석하는 사고 훈련입니다. 반복되는 패턴을 감지하고, 이전의 전환기를 통해 지금 우리가 어디에 서 있는지를 판단할 수 있게 해주는 중요한 도구입니다. 특히 미래 사회에서는 기술이 해줄 수 없는 해석력, 윤리적 사고력, 사회적 맥락을 읽어내는 능력이 훨씬 더 중요해질 것입니다. 따라서 역사 교육은 과목의 문제가 아니라, 사고의 틀로서 학교 안에 전략적으로 배치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어떤 방식이 실질적이고, 현실적으로 가능한 접근일까요? 저는 과목 확대나 수업 시수 증가를 요구하기보다는, 학교 시스템 안에서 역사적 사고가 ‘기능’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제안을 드리고자 합니다.
첫째, 수행평가나 융합형 교과 활동 안에 역사적 해석 과제를 공식화하는 방안입니다. 예를 들어 기술·통합사회·경제 수업 속에서도 “과거 산업화 시기의 노동 정책과 오늘날 플랫폼 노동의 구조적 유사점 분석”, “기계 도입이 교육에 준 영향을 20세기와 21세기 비교”와 같은 주제를 과제로 다룰 수 있다면, 학생들은 단순히 과목별 지식을 암기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 구조와 변화를 연결하며 통합적으로 사고할 수 있게 됩니다. 저는 이런 주제들을 실제로 고민하며 발표를 준비했고, 그런 사고 훈련이 단기간의 정보 습득보다 훨씬 더 깊이 있는 이해를 가능하게 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둘째, 지자체와 연계한 지역사 기반 프로젝트를 교육과정 안에 공식화하는 방안입니다. 제가 살고 있는 지역 역시 산업화, 이주, 도시 재편 등 다양한 변화 과정을 겪었지만, 학교 수업에서 이를 다뤄본 경험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러나 직접 옛 사진과 신문 자료, 주민들의 인터뷰 등을 찾아보면서, 제 삶의 공간이 어떤 시간의 흐름 위에 놓여 있는지를 처음으로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만약 지자체와 교육청이 협력하여 지역의 역사 자원과 공간을 교육적 목적으로 활용하고, 학생들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탐구 활동을 장려한다면, 역사는 더 이상 낡은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내 삶을 구성하는 시간’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역사 교육을 무조건적으로 확장하자는 입장이 아닙니다. 오히려 지금 우리가 어떤 인간을 교육하고 있는가라는 질문 속에서, 역사라는 도구가 어떤 방식으로 기능해야 하는지를 고민한 결과로 이 제안을 드리는 것입니다. 저는 역사주의에 매몰되지 않기 위해, 역사 교육을 과목이 아닌 ‘사고 구조의 틀’로 바라보려 했고, 그것이 지금의 기술사회에서 더욱 절실하다고 느꼈습니다.
이러한 제안이 지금 당장의 교육정책을 바꿀 수는 없겠지만, 학생의 입장에서 학교 교육이 어떤 가능성과 한계를 지니는지를 직접 체험하고 고민한 결과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는 시대일수록, 인간을 남기기 위한 지성이 더 필요합니다. 그 지성이 어떤 형태로 교육 속에 자리 잡을 수 있을지를 함께 고민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