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서] 비극에 대한 직접적 책임은 시도교육청에 있습니다.
[성명서] 비극에 대한 직접적 책임은 시도교육청에 있습니다.
이런 날이 오게 될 줄 몰랐습니다. 요즘 언론과 각종 매체를 보며 교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을 체감하고 있습니다. 이전까지는 잔인 하리만큼 무관심했고, 알면서도 침묵하고 회피해왔습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상황이 완전히 바뀌어 ‘교권 문제 가 이 정도로 심각한 줄 몰랐다’라며 대한민국 각계가 이제야, 너무나도 늦게, 드디어 교권 문제에 관심을 보 이고 있습니다. 왜 누군가가 사망한 후에야만 관련 문제를 크게 다루는 걸까요? 서이초 선생님 사망 사건이 아니었다면, 학생의 교사 폭행, 한 초등학교에서 연이은 저경력 교사들의 자살은 지극히 일부 언론에, 그것도 단신으로 짤막하게 보도되고 끝났을 것입니다. 그리고 학교 현장을 전혀 모르는 대중들은 기사 댓글에 ‘과거 권위주의적 학교의 유산이다’, ‘교사들의 자업자득이다’라는 폭력적인 반응을 보였겠죠. 그리고 언제나 그랬듯 유야무야 묻히고 흘러갔을 것입니다. 이러한 변화가 젋다 못해 어리디 어린 교사의 고통과, 공포와, 죽음으로 인한 결과라고 생각하니 선배 교사로서 마음이 아파서 미안하고 또 미안할 뿐입니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게 된 책임에서 누가 자유로울 수 있겠습니까? 한국 학교를 비판하기에만 바빴던 정치권, 교육부, 교육학자 및 대학 교수들, 지식인들, 언론, 인권을 표방하는 단체들, 학생 학부모를 비롯한 대중들, 조용조용 넘어가기만을 원하는 교장과 교감, 교권 문제에 대해 희망을 잃고 완전히 무기력해져 버린 교사들 ....... 하지만 그 책임의 무게가 다 같은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지난 성 명서에서 교육 당국과 정치권, 자유주의적 인권론자들을 비판하고 대책을 요구했지만, 오늘은 시도교육청을 비 판하고 대책을 요구하고자 합니다. 법적 제도적으로 수많은 문제가 있지만 현재의 한계 속에서도 시도교육청 이 할 일을 했다면 이 같은 비극을 막을 수 있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교사들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1차적으로 도움을 구하는 사람은 교장, 교감 같은 학교 관리자입니다. 그런데 관리자들은 대개 적극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하기보다는 조용히 마무리되기를 원하며 시도교육청(교 육지원청 포함)의 눈치를 봅니다. 교육청은 진상을 파악하고 교사를 도와 문제를 해결하려 하기보다는 교사의 행위에 문제가 있었는지 살피면서 교사를 위축시키기 일쑤입니다. 그러다 학교폭력 사안이 크게 터지거나 이 번처럼 교사가 극단적 선택을 하여 사회적 이슈가 되면 그제야 진상을 파악하고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나섭니 다. 학교 밖에서는 교육청의 이러한 비겁함과 무책임함에 대해 잘 모르겠지만, 교사들은 너무 잘 알고 있습니 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번 비극에 대한 직접적인 책임은 교사들이 교권 추락의 전쟁터에서 살고 있는 것을 뻔 히 알면서도 몇십 년째 외면해 왔던 시도교육청에게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언론이 정부와 정치권에 주목 하는 사이에 숨어서, 들끓는 여론이 잠잠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시도교육청을 공론의 장에 불러세우려 합니다.
교육청, 특히 서울특별시교육청은 이 사건의 공범임을 통감하시길 바랍니다. 한국 사회에서 교실 붕괴, 학교폭력, 교권 추락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한 것은 무려 1990년대 말입니다. 우리 는 서이초등학교 사건이 특정 부촌의 문제로만 다루어지는 것을 경계하고 있으나, 역사적으로 보아 ‘치맛바 람’, ‘극성 학부모’의 시작은 부촌이 맞습니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에서 그 시작은 서울, 그중에서도 현재 서이 초등학교가 위치해있는 강남일 것입니다. 1995년, 고 김대현 군 자살 사건으로 한국에서 학교폭력 문제가 수 면 위로 올라왔던 것도 서초에 있는 고등학교였습니다. 이러한 문제가 서울에서 제대로 잡히지 않는다면, 전국 으로 퍼져나가게 됩니다.
(이하 성명서의 내용은 지면 한계상 첨부파일로 전하고자 합니다.)
* 우리가 전국 16개 시도 교육청에 요구하는 사항은 아래와 같습니다
1. 서울교육청은 피해교사의 유가족과 서이초등학교 교사들에게 사과를 하고, 유가족과 동료교사들을 포함한 진상조사 위원회를 구성해야 합니다.
2. 연필 사건 처리 과정을 포함하여 사망 원인에 대한 철저한 심리적 부검을 실시하고 책임자를 처벌해야 합니다.
3. 서울시 교육감, 서울시교육청의 교권 담당자와 학교폭력 담당자를 대상으로 학생인권조례와 교권조례 제정 공방의 진실을 알기 위해 국정감사 및 청문회를 실시해야 합니다.
4. 서이초등학교 교장을 대상으로 청문회를 실시해야 합니다.
5. 최근 10년~20년 사이 교사의 사망, 명예퇴직 및 의원면직, 학생의 자살 사건과 관련하여 전수 조사를 해야 합니다.
6. 그동안 학교폭력이나 아동학대로 불명예를 뒤집어 쓴 교사들을 모두 재조사해서 부당한 사례는 명예를 회복시키고 경제적 손해를 배상까지 해야 합니다.
7. 교육청이 앞장서서 교권피해자 대책기구를 만들고 교권 피해자나 그 가족들을 참여시켜야 합니다.
8. 당장 이번 학기에 유난히 생활지도가 어려운 위기 학급을 조사하여 교장과 교감을 비롯한 관리자, 부장 교사, 그 학급의 부담임이 직접적이고 적극적인 지원에 나서야 합니다.
9. 교권의 날을 지정하고, 구체적인 계기 교육 자료를 제작하여 배포해야 합니다.
10. 법령에 기재되어 있는 ‘교육목적상 필요한 지도 방법’과 ‘교육활동의 범위’의 구체적 예시안을 만들어야 합니다.
11. ‘교육활동 침해’의 구체적인 예시를 제시하고, 교권 조례를 점검해야 합니다.
12. 상담이라는 이름으로 상담교사가, 장애 학생이라는 이유로 특수교사들이 당하고 있는, 교권 피해가 부지기수입니다. 이에 대한 실태조사를 실시하십시오.
13. 상담교사에게 책임을 전가하려는 시도를 멈추고 학생부의 훈육기능을 강화하는 성찰교실(약속교실)을 활성화하고 선도위원회를 법제화하는데 앞장서야 합니다.
14. 시·도교육청 교권 담당 변호사 운영에 대한 평가와 개선이 필요합니다.
15. 학생의 학교생활에 대한 교사의 평가권을 보장해야 합니다.
16. 학교폭력 해결에 있어서 학부모의 무분별한 개입 없이 교사가 교육적으로 중재 조정할 수 있도록 교사의 권한을 안전하고 적극적으로 보장해야 합니다.
17. 민원 대응 매뉴얼을 구체화 해야 합니다.
18. 교사들의 업무를 경감하는데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합니다.
19. 교사를 교육청의 명령에 복종하는 하급 공무원이 아니라, 교육 현장 전문가로서 인식하고 존중해야 하며 주요 제도 마련에 있어서 교사를 패싱하고 진행해서는 안됩니다.
그동안 계속해서 교실 붕괴와 교권 침해, 인권론에 대한 회의가 있었음에도 왜 사태가 이 지경이 되어서야 관심을 가지는지 통탄스럽습니다. 억울하게 돌아가신 선생님들을 위해서라도 더 이상 가만히 당하고만 있어서 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사회가 이 문제에 관심을 갖는 지금이야말로 우리 교육을 구할 수 있는, 어쩌면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2023년 8월 14일
사단법인 따돌림사회연구모임